한평생 개인의 안위보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내고자 했던
우리문화 유산 지킴이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을 아시나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 문화유산을 수준 높은 안목으로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하여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입니다.
휘문고등학교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을 스승으로 만나 그림 및 고서에
남다른 취미를 보였고,일본 와세다대학 유학시절 종로 일대의 상권과 전국 각지의 대토지를 물려
받아 조선 최고의 경제력을 갖춘 젊은 간송은 일제 치하라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이때 간송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사화가이자
금속학자인 위창 오세창 이다.
우리나라 서화가 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을 간행하였던 위창의 문하에서 간송은 민족의 혼인
우리 문화재를 수호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안목을 키워나갔다.
간송은 일제가 수탈해 가는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는 것에 온 힘을 기울였다.
간송은 1932년 인사동의 고서점 한남서림을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고서와 골동을 수집해
[훈민정음]해레본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를 지켜 낼 수 있었다.
10만 석 가산을 모두 탕진한다는 비방을 들으면서도 수집한 간송의 소장품에는 회화, 도자, 금속공예
불교조각, 전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이 포함되어 있고, 지금까지 우리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집한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하여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설립하였다.
간송옛집은 우리 문화재 수호에 큰 공을 세운 간송의 자취가 남아 있는 100여년 역사의
전통한옥으로 간송묘소와 어우러져 자리하고 있다.
옛집은 19세기말 그의 양부 전명기가 인근에 자리한 농장 및 경기북부, 황해도에서 오는
소출 관리를 목적으로 지은 것으로, 부친의 사망 이후 한옥 부근에 묘소를 꾸미고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필요한 제구를 보관하며, 일기가 좋지 않으면 본 한옥의 대청마루에서 제사를 지내는 등
재실로도 사용되었다.
간송은 양주군의 농장을 방문할 때나 부친의 제사를 모실 때 자주 이곳에 들러 생활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대문과 담장 일부 및 건물이 피해를 입었고, 전쟁 이후 종로구 본가 및 보화각의 피해
복구로 이곳의 수리가 지연되다가 1962년 간송이 세상을 떠나고 종로의 본가가 철거되면서 나온
자재를 활용하여 부분적 수리가 이루어졌다.
간송옛집은 간송이 생전 사용하였던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건축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목조 기와지붕 구조로 본채와 협문, 담장, 화장실 등 부속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양식은 정면 칸과 측면 칸이 ㄱ자형, 단층 홀처마 팔작지붕이며,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은 채
관리되어 오다가 2012년 12월 14일 국가 등록문화재 제521호[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으로
등재되었으며, 도봉구와 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 2015년 9월 11일 복원 개관하였다.
도봉구 문화관광의 요충지에 자리한 간송옛집은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수집하는
민족 문화유산의 수호자였던 간송의 얼과 혼이 서려 있다.
간송옛집 관람안내
관람시간:09:00~18:00
휴관일:매주 일. 월요일, 신정, 설날 및 추석연휴
문의:02-954-5757
교통정보
주소:서울시 도봉구 시루봉로 149-18(방학동)
지하철 4호선 쌍문역(2번 출구) 하차 후 마을버스 07번 환승
지선버스(초록) 1119,1128,1144,1167
간선버스(파랑) 130
일반버스(경기) 72-3 방학동 신동아타워 하차 도보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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